<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김 광한


잠을 자다 깨어나면 이승이고
깨어나지 못하면 저승이다

깨어나 이승 사람들 만나도 좋고
깨어나지 못해 저승 사람들 만나도 좋다.

모두가 정다운 사람들 정다웠던 사람들이다
하나는 과거이고
하나는 현실이고
하나는 정지돼 있고
하나는 진행형이다.

이만큼 살아왔으면 됐지
이승에 무슨 희망과 욕심이 있겠는가.

언제가 될지 모르나
짧아진 시간에 만날 사람만 만나고
갈곳만 가고 가질 것만 갖고
나머지는 지워 버리는게
내가 갖고 있는 짐을 털어버리는 방법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내 주머니에 든 얼마간의 용돈
유일한 우체국 통장은 언제나 잔고 10000원
월드세아인가 무슨 단체에서 가져갈 돈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배웠고
조금 더 많이 읽었고
남들보다 이름이 좀 있다고 꼴갑떨었던
지난날들의 흔적을 지우는 일

조병화 시인의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살자는
시의 한구절처럼 욕심부려 창피했던 일
뿌듯했던 영광스런 일들 모두가 떠나면
백지인 것을 잠들기 전에 생각한다.

주변 정리는 다했는가?
나는 이승이고 저승이고 모두다 좋다.

이승에서는 걱정하는 즐거움이 있고
저승에서는 저승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승의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

아프지 않고 잠들면서
꿈을 꾸듯 떠나는 저승 여행
참으로 복받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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